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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신건강복지법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은상] 한걸음 들어와주세요

  • 작성일2017-07-14 13:57
  • 조회수992
  • 수상자강O영

<한걸음 들어와주세요>

어느덧 5년 9개월입니다. 정신보건 현장에서 당사자와 함께 보낸 시간입니다. 현재 실무자의 역할로써 제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위태롭습니다. 나이가 한 살씩 늘어나면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듯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사람이지만 생각과 감정이 어느 한쪽으로 기우듯 지치는 듯합니다.

“그렇지, 그런 사람들과 있으면 힘들지.”

저를 알지 못하여도 제가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안에서 근무한다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네. 맞습니다. 힘듭니다.

좋아서 시작하는 일에도 간혹 어려움과 힘듦이 함께 있는 것 당연한 것인데 살아가면서 어찌 힘들지 않은 일들이 있을까요.

실무자로써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저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을 하게 되면서 제 상태가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그런 사람들과 있으면 힘들지.” 표현은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걱정이 아닌 당사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가 더 많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표현에는 저마다의 경험으로 정신질환자나 정신장애인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표현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라고 말속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정신질환자나 정신장애인을 생각하는 이미지에 대해 사람들과 사회는 아주 오래되고 낡았음에도 부서져버릴 틈도 없는 딱딱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 편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인생을 바꾸는 것 같다는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인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인생을 만드는 것은 생각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마주한 ‘경험‘을 통해 인생이 만들어지고 자신의 생각이 담긴 세계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고정관념도 편견도 생각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말이죠.

제가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생각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게 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현장실무자로써 경험하였던 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나누고픈 이야기 1.]

나.너.우리의 회복을 위해 움직이는 동료지원활동가. 2015년~2016년 ‘동행팀‘을 맡아 운영하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지만 사회복지현장에서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에게 고민,어려움 등이 있다면 사회복지사가 그에 맞는 필요한 활동들을 지원합니다. 반대로 제가 맡은 동행팀에서는 ‘동료지원활동가’가 서비스 이용자에게 상담, 일상지원, 여가문화생활지원 등 필요 활동들을 합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공통점으로 당사자가 느끼는 어려움을 같은 동료의 입장에서 다른 전문가보다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활동입니다. 실무자로써 팀을 운영하는 담당자이지만 실제로 팀을 이끌고 가야하는 주체는 당사자입니다. 그들의 동료지원활동을 2년간 지원하면서 당사자의 힘을 발견하고 얼마나 깊은지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2016년도의 일입니다. 동행팀에 이용자 1명이 의뢰되었습니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잦은 입퇴원이 반복되는 40대 여성분이었습니다. 의뢰해준 사회복지사의 가정방문상담의 종결이 예정되었고, 종결 후 이용자의 집을 방문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용자가 여성이며, 이용자의 집에서 활동하기를 원한다는 분이었기에 팀의 유일한 여성1명을 동료지원활동가로 매칭하였습니다.

이후 여성동료지원가의 센터 종결로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고 다른 동료지원활동가의 연결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용자는 남성도 괜찮다고 하여 팀 내부에서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여러명의 당사자 중 동료지원활동의 경험이 없었지만 담당자 등의 보조인력을 활용하여 제2대 동료지원가를 매칭하였습니다. 그는 특정사물에 대한 강박행동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간혹 강박행동이 나타날 때에는 하던 일상을 중지하고 강박에 몰두하는 분이었습니다. 이용자와 동행활동을 약속했던 어느날, 오전부터 계속된 강박행동으로 동행활동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그분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하였습니다. 강박행동 중의 하나를 하기 위해 외출하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전화로 동행을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결국 오셨지만 얼굴은 많이 지쳐있었고 불안해보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용자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이용자에게 인사를 바로 하고 강박행동에 필요한 사무용품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용자에게 동료지원활동가의 강박행동 증상에 알려준 적이 있었지만 저는 이용자에게 눈빛과 끄덕임으로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내 이용자는 집에서 찾아다 동료지원가분에게 사무용품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동행활동이 지속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과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료지원가는 첫 만남시 한 번의 짧은 강박행동 후에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날은 본인의 강박행동에 대해 이용자분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용자도 본인이 느끼는 정신과적 증상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증상을 공유하고 이해받으면서 낯설었던 두 분이 조금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강박행동은 본인자신이나 주변에서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운 증상입니다. 그럼에도 동행활동 중에는 강박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그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척이나 놀라웠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약 3개월간의 동료지원활동을 지속하였지만 개인사정으로 동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또 다른 동료지원가가 필요하였습니다. 다시 팀 내 회의를 진행하였지만 동료지원가를 연결 짓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정입니다. 동료지원가들도 본인의 일상과 증상, 컨디션 등을 포함한 각자가 갖고 있는 조건이 있었고,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일에는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담당자는 강요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의미 찾는 일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회의 끝은 또 다른 동료지원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나의 조건과 형편이 좋지 않아도 서비스가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게 동료지원활동은 나가야 한다고 결론이 납니다. 제 3대 동료지원가 선정이 됩니다. 그분은 동료지원활동의 경험이 있는 프로 활동가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신사적인 매너, 깔끔한 옷차림,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동행활동이 시작되면서 서비스 이용자에게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나가는 것이 귀찮고 집이 편해 이용자의 집에서만 진행되던 활동이 제 3대 동료지원가를 만나면서 영화관, 커피숍, 식당에서 식사하기 등 활동반경이 넓어진 것입니다. 활동이 지속되고 동행활동을 중간점검하면서 서비스 이용자에게 전화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이용자는 이렇게 말씀해주었습니다.

“동료지원가를 만나게 되면서 시간 관리도 되고, 기분도 환기가 되요. 생활을 이어나가는 도구예요. 동행을 안하면 힘이 들어요.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어요. 동료상담가를 보면서 누군가를 만날 때 외모도 신경 쓰고 말끔하게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미래에는 나도 동료지원가를 해보고 싶다는 희망도 가지게 되요.”라고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동료지원활동을 하는 당사자.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 모두 회복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이 활동을 지원하는 담당자인 저 역시도 당사자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더하고픈 이야기 2.]

“우리도 할 수 있다.“ 세상의 무대에 오르는 북춤세 공연팀. 17년 올해. 기관의 구조가 개편되면서 ‘공연팀’을 새로이 맡게 되었습니다.

사물놀이에 쓰이는 북을 음악가락에 맞춰 함께 북과 춤을 추는 공연팀입니다. 공연팀이기에 누군가 공연섭외를 요청한다면 사람들이 있는 무대 위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어야 합니다. 공연팀을 소개할 때에는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이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임을 알리게 됩니다. 무대에 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한 사전과정(기획, 연습 등)의 노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 개인이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 때문입니다. 부담감, 긴장감, 떨림 등을 안고 혹은 극복해야지만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공연팀에게는 사회적인 감정도 안고 무대에 서야 합니다. 언론에서는 주요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신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의 병력을 찾게 되면 그 다음의 기사들은 피의자=정신질환자로 동일시하거나 위험하다고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안에서 공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공연팀의 사업 계획을 함께 이야기 하면서 공연을 왜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공연팀원들은 이야기 합니다. “회복, 정신장애인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요.”라고 했습니다. 실무자인 저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는 당사자들의 생각들이었습니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인천의 정신병원, 성북구의 장애인복지관에서 외부 공연을 진행하였고, 기관 내부에서는 매달 현장실습을 하러오는 사회복무요원들 대상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쳐줍니다. 앵콜을 외칩니다. 공연팀의 모습을 보고 함께 웃으며 즐거워합니다. 이 자체가 지역사회에서 당사자의 편견을 해소하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무대인만큼 올해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함께하고픈 이야기 3.]

현장실무자를 위하는 그들만의 위로와 격려법.
올해, 일을 하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제가 맡고 있는 어떤 이용자 때문이었습니다. 수년간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보니 서로의 사정들을 다 알게 됩니다. 제가 맡고 있는 다른 이용자분이 제게 찾아와 “컨디션은 어때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면, 본인이 알고 있는 넌센스, 아재개그 등의 유머를 맞춰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무자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한 그분의 비법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면서 힘든 순간에도 그분의 유머에는 기분 좋은 감정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이용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저에게 “관심을 갖지 마세요.”라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저의 말에 제가 맡고 있는 다른 회원들도 있기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말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말에 전문가로써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그분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세영님도 소중하잖아요.”

그 외에도 힘내라고 이야기 해주는 분, 요즘 잘 지내시냐고 물어봐주시는 분, 눈인사를 해주시는 분.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들을 느끼며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회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시면 됩니다. 그 방법은 당사자들이 있는 지역사회로 만나러 오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루 중 반나절의 시간을 내어주시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의 진짜 사는 모습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