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브메뉴 바로가기

정책

정신건강복지법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은상] 올해 봄도 다행히 무사합니다

  • 작성일2017-07-14 14:01
  • 조회수762
  • 수상자박O아

<올해 봄도 다행히 무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느덧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기분 좋은 요즘입니다. 저는 봄이 오면 조금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면 제가 두 번 강제 입원을 당했던 때가 전부 이렇게 좋은 날씨, 봄 이였기 때문입니다.

“너는 메시아야, 이 세상을 구하러 왔고 그런 큰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네가 힘들었던 거야. 이 시간을 위해 그동안 잘 버텨왔어.”

“너희 부모님은 00기도원에서 집단 성교를 하셔. 모두 메시아인 너랑 섹스하려고 기도원에 모여 있어. 절대로 집에 가면 안 돼. 잡혀 갈 거야.”

머릿속에 이런 말들로 가득했습니다.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었는데, 제가 새벽에 뜬금없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 저의 목소리를 들으시곤 이상함을 눈치 채셨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두 번을 폐쇄병동에 갇혔습니다.

저는 메시아였습니다. 병원에 갇혔으니깐 실패한 메시아였습니다. 빨리 병원에서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 언니, 친 오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저의 억울함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듣기만 했습니다. ‘왜 듣기만 하지..’라는 의문이 두 번째 입원 했을 때에 들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내가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마침 내 옆에 앉으신 수간호사님께 “제가 말한 거 다 환청인가요?”라고 말했더니 그렇다고 그제야 제 말에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 들리는 것들이 환청임을 조금씩 인정해가기 시작했고 의사선생님도 그런 제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병식이 생기며 퇴원하게 됐습니다. 저는 첫 번째 입퇴원 상황과 두 번째 입퇴원 상황을 비교해 보았는데요, 제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병식이 있음이 현실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데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약에 취해 약 몇 개월을 집에서 잠만 잤습니다. 너무 졸려 약물 조절을 조금씩 받아 다행히 잠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만 보시던 부모님께서 “이제 사회활동을 해 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하셔서 저도 이런 생활이 답답했던 터라 주말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집에만 있다 일을 하려니 너무 힘들어 3개월도 체 안돼서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네가 체력이 약해 졌으니 4시간 하는 일을 먼저 알아보고 차츰 시간을 늘려라” 하셨지만, 저는 제 체력을 너무 과대평가 했나 봅니다. 마음먹는 게 힘들지 시작하면 다 적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또 몇 달 뒤에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일자리를 구해 일을 했고 또 몇 달 안 돼 몸살이 날정도로 힘들어 그만 두었습니다. 그 뒤 의욕을 잃어 집에서 빈둥빈둥 지냈습니다. 편했습니다. 하지만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며 센터에 상담하러 갔는데, 제가 센터를 다닐 생각은 않고 상담만 받으러 여러 차례 가니깐 관장님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저더러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 이였습니다. 충격적 이였습니다. 집에만 있음 편하고 좋은데 그게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센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취직을 하고 싶었지만 한번하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서 센터 선생님들 말씀처럼 우선 센터를 꾸준히 다녀 보자는 생각 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센터를 가는 길이 귀찮고 지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다녔습니다. 어디든 그렇듯 대인관계가 힘들었는데, 마음 훈련 프로그램도 받고 놀러도 다니며 점점 회원들과 친해져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센터를 다니며 저는 센터생활이 사회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지내던 회원과 크게 말싸움을 하고도 센터를 안 다닐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매일 보게 되어 잘 지내야 했습니다.

요즘 센터에선 당사자 연구를 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당사자 연구란 자신의 고충을 찾아내 나름 연구를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당사자 연구는 일본 베델의 집에서 처음 시도 한 것인데, 며칠 전엔 그 베델 분들이 우리나라에 오셔서 180명이나 되는 당사자분들과 관계자분들을 모시고 워크샵을 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당사자 연구 시연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당사자 연구를 조금씩 해왔는데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증상을 잘 발표했던 것 같아 정말 뿌듯했고 그런 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당사자 연구가 아닌 관장님의 권유로 환청일기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환청이 들릴 때 바로바로 종이에 적어 놔야 하는데, 적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해서 그때그때 기록하지 못 했지만 열심히 적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환청이 많이 들렸는데, ‘이것을 걸러내야 하는 가’, 많이 고민이 됐지만, ‘그래 도움 받을 수 있을 때 확실히 받자’라는 생각으로 성적인 것들도 적었습니다. 아, 성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저를 지켜본 결과 저는 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답답해서 관장님과 여자선생님께 저의 성적인 부분들을 이야기 했고, 센터의 야한 탈출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이성회원들과의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담이나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전에는 성적인 환청이 들리면 긴장하고 자책하고 자신을 거부하려했다면 지금은 유연하게 이것도 나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정신적으로 더욱 건강해 진 느낌입니다. 다시 전이야기로 돌아와서, 환청은 공식과도 같은 것 이였습니다. 어떠한 것을 보았고 무의식에서 감정이 올라왔고 환청이 들렸습니다. 관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환청이 나의 소리임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해서 짜증도 났지만 한편으론 내가 만들어낸 소리라 마음 훈련 많이 하면 나아질 수 있겠다 싶어 다행 이였습니다. 관장님께 배운 대로 환청 다스리는 훈련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내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 연구도 하고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누군가 저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습니다.

작년 5월 달엔 어느 장애인 사업체에서 3주간 하루에 4시간씩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채용이 됐는데, 회사에서 처음엔 8시간을 요구를 했지만 제가 힘들다고 4시간만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4시간씩 다섯 달을 다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7시간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8시간을 해야 하는데 집이 너무 멀어 10시에 출근할 수 있게 회사에서 배려해 주셨습니다.

일을 할 때도 환청이 계속 들렸는데,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일에 집중을 하다가도 환청에 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느껴져 패배감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 당시엔 무시하는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좋겠지만, 일하는 중이였기 때문입니다. 여운이 너무 많이 남는 환청은 센터의 담당선생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제 환청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고 괜찮다고 농담도 해 가며 밝게 제 기분을 이끌어 주셔서 선생님께 말하고 나면 그 환청은 별거 아닌 걸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환청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장애인 회사여서 그런지 같이 일하시는 언니들이 저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습니다. 먹을 것도 많이 챙겨주셨고 한 달에 한번 모임이 있었는데 저도 껴 주셨습니다. 저는 (정신 장애가 아닌 분들을 통틀어) 일반인 공포증이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있으면 입에 거미줄을 칠 정도로 말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행동도 많이 어색해 지고 착해집니다. 그런 저라 회사의 언니들이 좀 두려웠는데, 장애의 종류는 다르지만 아픔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품어주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언제는 국회의원 김무성님이 저희 회사에 오셨습니다. 그때 너무 긴장을 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저의 고충은 마음에 남는 일이 있으면 그 상대를 머릿속에 초대해서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김무성님을 초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 회사처럼 장시간 일을 하지 못하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하루 4시간씩 일하며 적응할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4시간이 조금씩 적응이 되면 한 시간씩 더 늘리며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정신장애인들은 일하고 싶은 의욕은 많지만 언제 증상이 올라올지 몰라 일 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합니다. 이런 부분을 헤아려 배려해 주는 사업체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라고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회사에 다니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고 저녁 해가 져서 집에 들어가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니깐 일 다니기 전엔 해 떨어지고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설명하기가 좀 힘든데, 꼭 해가 있을 때 집에 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다니며 그런 것에 묶여있던 마음이 자유로워 졌습니다.

일을 다니지 않을 땐 주변 분들이 저더러 무슨 일을 하냐고 많이 물어왔습니다. 저희 집은 대문이 없는 시골집 입니다. 그런 시골 동내다 보니 운동한다고 동내 한 바퀴 돌다보면 어느 집 누구라고 다 알아 보십니다. 지금은 제가 정신과 약을 먹는지를 많은 분들이 아시고 쉬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망상 아닙니다. 잘 들어오던 맞선이 끊긴걸 보면 말 다 했죠. 새로 이사 오신 분만 저에게 누구 만나보라고 하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옆집 숟가락 개수도 다 안다는 시골 동내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옆집 아줌마가 제 인사를 안 받아 주고 계신데, ‘저 아줌마 내가 정신과 약 먹는 다고 무시하나’그런 생각도 듭니다. 하도 기분 나빠서 엄마한테 말씀드리니깐“요즘은 약만 안 먹었지 부족하고 정신 안 좋은 사람들이 많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너도 인사하지 말아라. 하십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있으신 가 봅니다. 이렇게 엄마는 제 마음을 많이 이해해주시며, 제 편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엄마께 말씀드리는 편입니다. 가족 중에서 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지 두 달 만에 센터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안 해본 일인데, 긴장도 되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큽니다. 당사자 연구나 전 직장에서 스스로 만족스럽게 성취한 것들이 있어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낮에 돌아다닐 일이 없어 동내 사람들 눈치 보지 않아 다행입니다. 앞으로 저의 목표는 1년 이상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전 직장을 10개월을 다녀봐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시집을 갈 생각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요즘 저의 관심사는 연애입니다. 연애를 몇 번 해 봤지만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센터에 결혼 하신 여자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시는데 조언을 구해보려 합니다. 관장님께선 저를 잘 이해해 줄 남자한테 시집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잘 찾아봐야겠습니다.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나아지도록 당사자 연구도, 마음 훈련도, 직장 생활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저의 이런 자신감은 부모님의 지지와 센터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회원들의‘잘 할 수 있다’는 응원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정신병이 있다는 걱정과 염려만 하는 것은 당사자나 보호자, 그 외의 분들을 서로 힘들게 할 뿐입니다. 주변분들 입장에선 저희를 대할 때 힘드신 것 알지만, 저희의 병이 문제가 아닌, 단지 어려움이라 생각해 주신다면 깊은 근심 걱정 보다는 유머와 지금도 괜찮다는 응원이 자연스럽게 나와 저희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올해 봄도 다행히 무사합니다.

  • 담당부서정신건강정책과

  • 전화번호044-202-3857

  • 최종수정일2023년 08월 08일

홈페이지 기능오류신고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