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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신건강복지법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가작] 나의 희망은 현재 진행형

  • 작성일2017-07-14 10:47
  • 조회수441
  • 수상자이O은

<나의 희망은 현재 진행형>

조현병 정신질환 당사자 23년차...

조현병 으로 부터의 회복과 나의 삶으로의 회복과 성장을 희망 가득차게 이야기 할수 있는 그 이름도 당당한 정신질환 당사자계의 희망의 아이콘, 12년차 직장인, 현재 용인정신병원 해뜰날센터 동료지원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성은 나의 이야기를 들려 주려 한다.

동료지원가 라는 직역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정신질환을 앓고 그 정신질환을 회복해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 당사자를 돕는 상처받은 치유자(운디드 힐러) 라는 직역을 의미 한다.

이렇게 정신질환을 앓고도 기쁘게 희망을 이야기 할수 있는 건 정신질환이 나에게 준 선물 꾸러미 들 때문이다.

그 소중한 선물 꾸러미를 정신질환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선물 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선물 꾸러미를 풀어 놓으려 한다.

내가 조현병을 진단을 받고 첫 입원 치료를 받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 이었다.

**에서 중학교를 다녔음 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등한 시 한 결과로 고등학교를 **으로 가게 되었다.

중학교 다닐때는 학교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 일 정도로 유명했던 나 였다.

그 이유는 개그우먼 이라 불리 정도로 재미 있는 학교의 스타 였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 들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할 시간에 난, 개콘(개그콘서트) 작가가 되어 아이 들을 웃길 스토리를 구상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공부는 뒷전, 중학교 3학년 시절 수학 선생님이 나를 보면 하시는 말씀이 “우리 성은이는 공부 만 잘하면 금상첨화 인데” 하고 자주 말씀 하셨다.

이렇게 공부에 관심이 없었으니 성적은 하위 수준 ** 시내에서는 나의 성적으로 들어갈수 있는 학교는 없었다.

난 타 지방에 있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 한 후 나의 생각은 공부 만의 나의 살 길 이다 라는 생각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은 물론, 쉬는시간에도 화장실 가는 시간 만 빼놓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반 아이들과 소통 하지 않았고, 그저 공부 뿐이 모르는 왕따 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소통 하지 않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 힘듬의 절정은 1학년 마지막 기말 고사 무렵, 반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나의 등수를 하나 하나 밀어내는 공포로 다가왔고, 점점 마음이 조급해 지고 불안해 지고, 수업시간 선생님의 강의도 집중 할수 없을 정도로 혼란 스러웠다.

그 혼란은 나의 수면 상태에도 영향을 미처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고, 불안한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잠을 못 이룬지 3일이 지나니 난 점점 이상해 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넛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나를 흉 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네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나의 살을 찌르는 신체적 통증이 느껴졌다.

항상 다니는 길에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알고 나를 헤치려 하는 것 같았다.

항상 건너는 건널목 파란신호가 켜지면, 하느님이 나를 죽이라는 신호 인 것 같았다.

항상 잘 먹던 밥에서 이상한 맛과 냄새가 느껴져 밥을 먹을 수 도 없었다.

이런 달라진 나의 모습을 포착한 부모님은 피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딸을 정신과 병동에 입원 시키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심장이 녹아 내리는 아픔 이었다고 말씀 하셨다.

내가 만약 다른 외과질환으로 입원을 했다면 지인에게도 알리고 힘든 마음을 나누었을 덴데 정신과에 입원 한다고 알리면, 미쳐서 그렇구나 정상이 아닐 것 이다..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가까운 친척 이외에는 아픈 마음을 함께 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힘든 결정을 빨리 해주신 덕분에 빠른 회복속도를 보였다.

암 도 조기발견하고 조기치료 하면 좋은 예후가 있듯 정신질환도 그런 것 같다.

그때 알았다. 정신질환은 숨 길 병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약물치료, 재활치료 사회의 배려로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할수 있는 치료가 병행 된다면 좋은 예후를 보일 수 있는 질환 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난 3개월 간의 정신과 입원 치료를 마치고 약물치료를 받으며 1년 휴학을 하고 낮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낮병원은 24시간 입원에 있는 형태가 아니라 9시에 등원하여 여러 가지 치료프로그램을 하고 4시에 집으로 귀가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주간 치료를 하는 곳이다.

낮병원을 통해서 증상이 점점 좋아졌고, 예전의 밝은 나 로 돌아갈수 있었다.

그 후 낮병원 치료 프로그램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게 되었고, 학교도 복학하여 중간 중간 고비도 있었지만,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을 하고 첫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스트레스로 인해 한달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고, 엎 친데 덮친 격으로 안정적으로 복용하던 정신과 약물에 호르몬 계의 이상이 생겨서 약물을 2주정도 중단하는 시기가 함께 겹치게 되었다.

그 시기에 성질급한 정신과적 증상들은 다시 나타났고, 난 다시 절망하기 시작했다.

증상으로도 힘들었지만,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성공케이스로 불리던 내가 다시 증상이 나타나고, 직장을 한달 만에 그만 둔 나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 선생님들을 생각하니 난 정말 절망 스러웠다.

난...점점 우울해 지고, 불안해 지고, 지인들과도 연락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집 옥상에서 투신을 했던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 되었고, 몇 번의 수술을 하였고, 한달 정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제는 끝이구나...난 힘이 없어....하고 절망의 시간을 보낼 때, 나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건, 나를 끝까지 응원해 주고 변함없이 아껴준, 정신질환을 앓고 알게 된, 치료진 선생님들의 따듯한 마음과, 나로 인해 정말 많은 고생을 한 가족들의 정성으로 난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복은 인복 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들과 삶을 영위한다는 건 가장 큰 행복 이다. 이런 따듯한 사람들의 변함없는 응원으로 난 다시 활기차게 생활 하기 시작했다.

2005년 무렵 다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노인전문병원 조리실, 주업무는 설거지...여름에는 찜질방수준에 더위에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해야했고, 손 이 느렸던 난, “늘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고, 일 처리가 너무 느려서 혼나기도 일쑤 였다.

그래도 성격이 좋았고, 결근 잘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 함께 일해서 난 힘든 직장생활을 견딜수 있었다. 힘든시간 동안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포기하는게 습관이 될까봐 포기할수 없었고, 그동안 나로 인해 힘드셨던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어서 포기할수 없었고, 가장 큰 이유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들은 힘든 상황이 오면, 쉽게 포기 한다는 의지가 약한 사람 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 포기 할수 없었다.

이런 나의 강인한 의지와 나의 일을 자신의 일 인양 도와준 동료들의 힘으로 난 힘든 시간을 견딜수 있었다.

직업을 장기적으로 유지 할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은 같은 공간안에 같은 일을 하는 당사자 동료들이 서넛 함께 일하면 서로 상호보완이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일 할수 있는데 큰 원동력이 된다.

그 원동력으로 난 탄력을 받아서 열심히 일했고, 5년이 지나니 손 이빨라져 “늘보에서 설거지의 달인” 이 되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무언가 이루려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고 포기 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난 이런 내가 자랑스러웠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내가 너무 대견해 내가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난, 다시 자존감을 회복 할수 있었고, 이런 나의 모습을 좋게 보신 주위에 많은 고마운 선생님들은 나에게 정신질환 회복 강의, 직업재활 강의 등등을 부탁 하셨고, 난 성심성의껏 열심히 강의 활동을 했고, 명강사라는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노인병원 일을 하면서 용인정신병원 낮병원 해뜰날센터에 회복연구회 라는 프로그램에 전문자원봉사자로 활동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회복연구회를 잠깐 소개 하자면 회복이라는 큰 테마 아래 회복에 성공한 사례에 대한 동영상을 보면서 희망을 얻기도 하고, 회복수기, 직업재활수기, 가족수기를 나누며 힘을 얻기도 하고, 증상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당사자들이 능동적으로 토론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기도 하고, 약물교육을 받기도 하고, 타 사회복귀 시설에서 리더들을 초청해서“회복”을 주제로 간담회를 갖기도 하는 회복을 연구하는 시간이다.

그“회복연구회”시간에 해뜰날센터장님과 메인진행을 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 공로를 인정 받아서 2015년 10월 용인정신병원 낮병원 해뜰날센터 동료지원가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그 희망찬 삶을 기쁘게 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이런 좋은날이 온건, 힘든 시간을 포기 하지 않고 견딘 “인내의 승리” 라고 말했다.

난 이렇게 답변했다...그 인내의 힘의 원천은 정신질환을 앓고 만나게된 너무도 좋은 정신질환 당사자 친구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준 치료자 선생님들 덕분 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 할수 있다.

그 힘으로 난 용기를 내어 **대 사이버 대학 사회복지 학과에 도전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전액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3학년 1학기를 공부하고 있다.

진정한 용기란...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고 두렵지만 계속 하는게 용기 라고 누군가 말했다.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며 정말 자신이 소중하다면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다 라는 믿음 아래 나의 삶을 힘차게 살고 있다.

동료지원가 로써의 삶, 나의 인생의 또다른 큰 도전 이었다.

같은 아픔을 경험했다 해도 타인을 돕고 이해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컴맹이고, 복사 팩스 업무 행정업무 등 처음 하는 일들 힘들었다.

하지만, 난 강인한 인내력으로 열심히 일했고 나를 많이 이해 해주고 도와주는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점점 동료지원가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행정일은 하지 않고, 당사자 들을 도울수 있는 일에 매진 하고 있다.

아픈 마음을 어루 만지고, 아픈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위로 하고 용기와 힘을 주며 무엇보다 함께 한다는 것...그것이 진정한 동료지원가의 삶이 아닐까...생각한다.

그리고 알았다....보통 우리가 말하는 회복은 (환청, 망상)등 증상이 소멸 될 때 회복 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회복은 잔류증상이 있더라도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의미 있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 그것이 회복 이다 라고 말 할수 있다.

나 역시 지금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잔류증상이 있다.

퇴근 무렵 사무실에 형광등을 잘 소등 했는지 확인하고, 컴퓨터는 잘 꼈는지, 냉.난방 기계는 잘 꼈는지, 숫자를 세며 확인한다.

이런 잔류증상이 있어도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하고 난 지금 행복 하다.

누군가의 인생 마라톤에 함께 호흡을 맞추며 옆에서 달리는 페이스메이커 그 역할이 동료지원가의 삶 인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동료지원가의 삶의 희노애락을 난 능동적인 자세로 살 것 이고, 힘듬이 있어 흔들릴 때도 있게 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나의 삶을 동료지원가의 삶 을 살 것 이다.

따듯한 햇살을 맞고 살기 위해서는 혹한의 추운겨울의 시간을 이겨야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살기 위해서는 폭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 시간을 잘 견디면 분명 행복 이라는 친구가 점점 나를 향해 올 것을 믿는다.

마지막 으로 정신질환 당사자로 살면서 정책기관에 바라는 점을 말하려 한다.

첫째, 재활의 꽃 이라고 불리는 “직업” 그 어느 약 보다 효과 가 뛰어 나다는 직업 이라는 약....이 약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신장애인들 에게 많은 취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취업을 장기적 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잡코치 가 있다면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당당한 사회에 일원으로써 맡은 역할을 잘 수행 할 수 있을 것이다.

잡코치 지원과 확대 중요하다.

둘째, 재활치료 기관(낮병원)의 확대와 지원,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 에서의 만성정신질환자 치료지원, 사회복귀시설, 주거시설의 확대 및 지원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격리 치료 하는게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치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학창시절 발병하여 학업이 중단 된 정신장애인 들의 학업을 도울수 있는 멘토 서비스 지원으로 정신장애인 들도 충분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멘토서비스를 지원 해 주길 바란다.

넷째, 동료지원가 들이 정규직으로 일 할수 있는 취업지원이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힘차게 살 수 있는 건, 당당한 정규직 직원 이기 때문이다. 많은 동료지원가 가 양성되고 그들이 정규직으로 일 할수 있는 날들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사회적 지원과 배려가 있다면, 분명 정신질환은 극복 할수 있는 병이다.

이런 희망찬 날을 꿈꾸고 기다리며, 난 오늘도 내일도 동료지원가 로 열심히 살 것이다.

“ 희망”은 현재 진행형...

우린 아름다운 꽃 이기에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바람에 흔들리며 피는 아름다운 꽃들을 응원 합니다.

- 관계자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

먼저 이렇게 의미 있는 공모전을 개최해 주신 보건복지부 관계자 여러분 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쓰는 것 도 회복 이다”라는 말이 있듯, 공모전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이 기회를 통해 회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모전에 여러번 도전을 했었고 두 번 입상 한 경험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개최한 공모전은 처음 도전 입니다.

이번 공모전은 타 공모전 수상작 과는 달리 현재의 동료지원가 의 삶에 대해서 많이 다루었으니, 참고하셔서 끝까지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담당부서정신건강정책과

  • 전화번호044-202-3857

  • 최종수정일2023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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