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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신건강복지법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가작] 살아있는 것이 희망이다

  • 작성일2017-07-14 13:39
  • 조회수325
  • 수상자정O환

<살아있는 것이 희망이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 집을 나와 20대 후반까지 혼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그러면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은 만났고 정신과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애인 수첩은 있지만, 나에게는 장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송국클럽하우스에서 다른 회원들과 활동을 할 때도, 취직을 해서 일을 할 때도, 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할 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이 있었다.

그러던 중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기술을 배워 다시 취직을 하려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송국클럽하우스에 한번 가보라고 해서 송국에 다니게 되었다. 100일을 출근하고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에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입학을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분과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어깨를 부딪치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안 해서 불쾌했고 오븐기계 작동법을 몰라서 물어보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속상해서 혼자라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바리스타 자격증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고 제과제빵 선생님이 취직도 시켜주셨다.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신장애,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한번은 지적장애인이 혼자 웃는 것을 보고 제가 고함을 질러서 혼이 나기도 했다. 그때 송국클럽하우스 취업부 담당 한지연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한 달 내내 들어주었다. 내 속에 있는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3평짜리 여인숙에서 한 달에 17만 원의 방세를 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장님이 아들이 찾아오면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 달에 만 원씩이라도 모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했다. 원래 돈을 잘 모으지 못하고 특별히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는데 매일 경제 일기를 쓰라고 했다. 또 외래를 잘 다니는지 물어보며 약과 건강 상태도 체크해주었다. 송국클럽하우스에 다니면 한 달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많이 되고 즐겁다. 한지연선생님과 함께 서면에 있는 쪽방지원센터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했고, 지금의 금곡 주공아파트에 집을 얻게 되었다. 그때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좋았다. 함께 가전제품도 사고 생필품을 구입했다. 세심하게 챙겨줘서 고마웠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동안 여인숙에서 지냈고 지금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송국클럽하우스가 없었다면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스마트폰으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용히 통화하라고 말을 했는데 소장님이 남의 일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요즘 세상이 그렇다고 했다. 송국클럽하우스에서도 처음에는 나의 거친 말투와 행동 그리고 왔다 갔다 하는 기분 때문에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소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송국클럽하우스 일일찻집 행사에 참여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기 위해 행사장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기지개를 펴며 팔을 들었고, 그 사람의 주먹이 내 앞으로 지나가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화를 내지 않고 참고 있는데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보면대가 다른 사람에게 부딪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연주자는 몇 번이나 옆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실수를 하면 사과를 하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몰랐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매너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평소에 인사를 잘하고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나의 바람은 2년 뒤 아파트 재계약이 잘되는 것과 조금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남들처럼 사람들도 잘 사귀며 취미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먼 훗날 고아원에서 자랐고, 지금 따로 떨어져 있는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내가 너무 힘든 시기에 아이를 낳아 내손으로 키우지 못했다. 예전에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면 고아원 주변을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 한지연선생님이 시설에 연락을 해주었다. 작년에 아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들의 앞날을 위해 자세한 이야기를 쓸 수는 없지만, 나는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앞으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면서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담당부서정신건강정책과

  • 전화번호044-202-3857

  • 최종수정일2023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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