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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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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또 다른 그대 모습

  • 작성일2017-07-14 10:32
  • 조회수245
  • 수상자오O리

<또 다른 그대 모습>

2017년 새해가 시작되고, 센터 내에선 업무분장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동안 취업 담당을 맡고 있었는데, 올해부터 지원팀이라는 새로운 팀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원팀을 맡고 나는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대화를 하고,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행동했다. 의도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유독 나의 눈의 띄는 회원이 있었다. 작년 겨울쯤 센터에 등록한 회원이었다.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취업장에 일하고 있는 회원들을 만나러 다니나보니 센터 내부에 있는 새로운 회원들에게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유독 눈의 띄었던 이유가 너무 눈에 띄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다른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가끔 질문을 하면 ‘네,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잠을 자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일어나요 OO님’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그는 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 불안해서, 상대방과 눈이 마주칠까봐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너무 궁금했다. 다가가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그 회원은 나를 경계라도 하듯 눈길조차, 나에게 전혀 곁을 주지 않았다. 지원팀 회원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고, 팀 내에서 가만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회원들이 말을 걸어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단답형의 대답만 하곤 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매일 매일 되던 안 되던 자극을 줘야겠다고. 고개 숙인 그의 모습 말고 또 다른 그의 모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끌어내어 보고 싶었다. 사실상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소위 정신보건전문요원이라던 나도 굳게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 숙인 회원에게 매일 말을 걸어 보았다. “지금 무슨 생각해요? 어제 집에 가서 무엇을 했어요? 이게 뭐예요?” 등등. 주로 그러한 질문에 회원의 대답은 “강박증이 너무 심해서 힘들어요. 너무 불안해요. 집에 빨리 가야해요.” 라는 말뿐이었다.

그가 내 질문에 마지못해 답하는 것들은 “증상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라는 말이었다. 순간순간 증상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는 회원이 너무 안타까웠고, 내가 괜히 힘들어하는 회원에게 너무 많은 질문들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네, 아니요’가 아닌 힘들다고 표현해주는 그였다.

매일 나는 그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그는 시종일관 같은 답변을 해주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그가 할 때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을 하는 바람에 나름 오해를 하여 말 못할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지원팀에서 활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되어 지원팀 일부가 다과를 구매하고 준비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다과 준비를 맡게 되었고 준비과정에서 함께 해줄 회원분이 있어야만 했다. “오미리님과 함께 다과를 준비해줄 분?” 이라고 외쳤고, 나도 모르게 그 회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 회원에게 “저와 함께 준비할까요?”라고 물었다. 매일 고개를 숙이고 증상 때문에 힘들다고 했던 그였기에, 사실상 하겠다고 선뜻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와 함께 다과 준비를 위해 시장 내에 있는 슈퍼에 가게 되었고, 하나 둘씩 과자와 과일의 가격을 살피고 장바구니에 담아야 했다. 가는 동안까지 별 말 없던 그가, 질문에 대답만 했던 그가, 고개만 숙이고 있던 그가, 내가 무거운 귤 상자를 들려고 하자, 손짓을 하며 내려놓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귤 상자를 번쩍 들고 계산대에 가져다주었다. 함께 슈퍼에 온 것만으로도 그에게 큰 용기였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그의 말이 더 놀라웠다. 그는 씨익 웃더니 나를 보며 “미리님이 몸집이 거대하니 귤 상자를 들고, 제가 다과를 들고 가도 되겠죠?”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가득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뭐지?, 진심인건가, 아님 장난인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그는 번쩍 귤 상자를 들더니 센터로 가자고 했다. 나는 센터로 돌아와서 아까 내가 그에게 함께 슈퍼에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어찌할 뻔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무척 잘한 일이라고.

그 이후 한결 그의 얼굴이 편해진 것 같았다. 그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외부 교육을 갈 때도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 순간에는 회원이 아닌 그 동안 알고 지낸 남동생처럼 나에게 궁금한 것들을 하나 둘씩 꺼내두었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도 곧잘 해주었다. “시를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다, 엄마와 찜질방을 갈 때 가장 행복하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말티즈다. 미리님은 동생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 등등. 이제는 내가 굳이 애써 질문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원팀 안에서도 어느새 그는 소통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동갑내기인지도 몰랐던 회원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친구를 하기로 하고 말을 놓기도 했다. 그의 그 진심을 알았는지 동갑내기 친구는 그가 힘들 때 귀신처럼 어떻게 알고는 넌지시 와서 어깨를 두들겨주고, 힘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많이 힘들어? 힘내”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멋쩍은 듯 보였지만 입 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았을 때 분명 좋아하는 눈치였다.

사람들과 소통이란 것을 하면서 그동안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회원이 형이라는 사실과, 그 형이 회원에게 고마운 사람, 힘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이후 그는 센터에 오면 오자마자 동갑내기 친구와 형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안부를 물었고, 장난스런 이야기도 했다. 그 광경이 처음에는 매우 얼떨떨하고 신기했지만,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보니 마냥 좋기만 했다.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지원팀 내에서는 회원들이 직접 이용희망자를 대상으로 기관안내 관련 자료를 소개하고 발표하는 업무를 한다. 지원팀에 있는 모든 회원들은 기관안내를 한 번씩은 해야 하고,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신 없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일관했던 그가 발표를 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비록 보조 발표자였지만 기관안내를 위해 전날 예쁘게 머리를 깎고, 귀엽게 옷을 입고 왔다. 나도 모르게 너무 좋아 웃음을 지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왜 저를 보고 웃으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는 점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었다. 지원팀 내에 그와 친해지고 있었던, 어렵게 말을 놓게 되었던 동갑내기 친구가 취업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그 친구가 취업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섭섭하다고 나에게 넌지시 속마음을 표현했다.

“미리님, OO이가 취업을 해서 너무 아쉬워요. 친해지고 있었는데, 앞으로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계속 볼 수는 없을까요?”라고 물었다. 정말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에게 “OO님은 주 3일만 출근을 해서 주 2일은 지원팀에 와서 활동할 거예요. 라고 이야기하였고, 그는 ”정말요?“라고 대답하고는 다행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정말 뜻밖에 모습이었다.

얼마 전 그와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그에게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조만간 하루 휴가를 쓰고 집에서 쉴 계획이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후 나는 달콤한 휴가 날을 보내고 있었다. 유독 그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나근나근 하여 지인과의 약속도 취소한 채 집에서 미동도 거의 않고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런데 ‘띠링’ 메신저가 울렸다. 나는 귀찮게 쉬는 날 누구지? 라고 중얼거리며 메신저를 확인했다. 메신저에는 그의 이름이 보였고 뭐지 싶어 열어 보았다. 그가 보낸 메신저에는 “미리님, 스트레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힘내세요 파이팅!” 라는 문구가 있었다. 처음이었다. 매일 힘들다고, 전날 강박증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해 센터에 늦는다고 간혹 문자를 보냈던 그였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나는 그 문자를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에게 너무 고마웠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그에게 위로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나는 요즘 센터에 출근을 하여 그를 볼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난다. 매일 같이 고개만 푹 숙이고 말 없던 그가, 동료 회원과 친구가 되고, 동생이 되고, 사회복지사에게는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을 볼 때, “내가 정말 이 일을 잘 선택했구나, 참 잘한 일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행복함을 느낀다.

  • 담당부서정신건강정책과

  • 전화번호044-202-3857

  • 최종수정일2023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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